과도한 대회 시스템이 낳은 엘리트 체육의 병폐

쉴 틈 없는 시합 일정, 위기에 빠진 태권도 종주국 대한민국 태권도 엘리트 체육계가 심각한 '대회 과다 개최' 문제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연간 대회 일정을 살펴보면, 2025년 7월에만 대학연맹전, 경기도지사기, 국방부장관기 등 다수의 대회가 연이어 진행되는 등, 훈련 및 회복 사이클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양상을 보인다.
현직 코치들은 "정말 대회가 많다"라고 토로하며, 충분한 보강 훈련 없이 시합에 나서는 선수들이 몸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태권도계의 "과감한 혁신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는 등, 대회 과잉이 선수 육성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병폐로 인식되고 있다.
만성 피로와 부상 은폐로 혹사당하는 선수들의 과도한 대회 참가는 선수들에게 치명적인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신체적·기술적 한계 지속적인 경기 출전과 훈련은 만성 피로와 '과훈련 증후군(Overtraining Syndrome)'을 유발하며 경기 수행 능력을 떨어뜨린다. 특히 태권도에서 빈번한 발목 염좌 등의 부상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선수에게도 흔한 질병으로 인식될 정도다. 문제는 부상 발생 시 대부분 응급 구조사나 간호사만 배치하고 전문 의료진 미비로 적절한 초기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부상에 대한 선수와 지도자의 인식이 마비된 현실이다. 경기 실적을 우선시하는 환경 속에서, 선수들은 부상을 숨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한 고등부 선수는 대학 입시를 위해 십자인대파열 진단을 받고도 6개월간 수술을 미룬 채 대회에 출전했으며, 선수들은 경기력을 높이려는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무리한 동작을 시도하다 부상을 입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즉, 시스템이 요구하는 무리한 경쟁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심리적 번아웃과 슬럼프 신체적 피로와 더불어 지속적인 대회 압박은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이는 '피로심리'로 이어져 운동 슬럼프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훈련과 경기의 반복으로 선수들은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는 번아웃 증후군을 겪을 위험이 매우 크다.
입시와 평가 시스템의 족쇄에서 대회 과다 개최의 근본 원인은 복잡하게 얽힌 국내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 있다.
한국체육대학교를 비롯한 주요 대학 입시 전형에서 '경기입상실적'은 최대 90%까지 반영되는 절대적인 선발 기준이다. 이는 학생 선수들에게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무조건 대회에 참가하고 성적을 내야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이 압박은 지도자에게도 전이되어, 지도자 특전이나 수련생 평가 기준에 '경기실적'이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어 선수들을 혹사하는 환경이 시스템적으로 강제된다.
최근 선수들의 꾸준한 노력을 평가하기 위해 개편된 랭킹 시스템은 '지속적인 경기 출전'을 필수 요소로 만들었다. 본래 긍정적인 의도였으나, 국내의 경직된 입시 제도가 여전히 대회 성적을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상황과 결합하면서, 선수들은 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해 쉴 틈 없이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정부는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전국대회 참가 허용 일수 제한 및 최저학력제를 도입했지만, 현장에서는 "운동권 침해"라는 반발과 함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학 입시와 지도자 평가가 여전히 '경기 실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책의 목표(학습권 보장)와 현장의 요구(경기 실적) 사이의 불일치가 선수들에게 더 높은 성과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태권도 엘리트 체육의 혁신을 위해 다음의 정책적 시행이 시급하다.
경쟁 시스템 혁신으로 주말 리그제 도입하는 등 이란을 벤치마킹하여 불필요한 대회 참가 없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권역별 엘리트 주말 리그제를 도입해야 한다.
'비시즌' 의무화하고 있는 유럽 사례를 참고하여 최소 한 달 이상의 의무적인 대회 휴식기를 설정,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기본기 훈련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선수 복지 강화를 위한 의료 지원 전문 인력 의무 배치하고 모든 공식 대회에 의무 트레이너와 전문 의료진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스포츠 심리 상담 도입도 필요하다. 선수들의 심리적 피로와 번아웃 관리를 위해 스포츠 심리학 전문가가 상주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해야 한다.
입시 및 평가 제도 개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 입시 다면적 평가를 경기 실적의 절대적 비중을 축소하고 학업 성적, 훈련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결과'보다 '성장'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도자 평가 기준 개혁도 필요하다. 지도자 평가 역시 선수들의 부상률, 훈련 관리 역량 등을 포함하여 선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태권도 산업 외연 확장으로 미디어형 관람형 및 신규 종목 개발 '관람형 태권도'와 '버추얼 태권도'를 개발하고 프로 스포츠로 육성하여 엘리트 체육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문화 콘텐츠화의 태권도 대회를 지역 축제나 'K-문화관광 킬러콘텐츠'로 발전시켜, 대중적 저변을 확대하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 태권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건강과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적이다.
'결과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성장 중심'의 상생 모델을 구축할 때,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다시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 2025. 10. 29 : 수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