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현 / 국기원 태권도시범단 단장
태권도는 제 인생입니다. 지금은 국기원태권도시범단 단장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태권도의 정신과 기술을 지도·보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시범단과 세계 활동무대가 아닌,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하는 ‘우리 마을 태권도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태권도장,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저출생 사회 구조와 경기 침체 속에서 수련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도장 운영은 갈수록 팍팍해졌다는 일선 태권도장 관장님들의 푸념과 하소연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생계를 위해, 생존을 위해 배달과 대리운전 등 ‘투잡’을 하는 지도자들을 보면 마음이 먹먹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의 바탕에는 ‘도장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진 않을까요?
태권도장은 마을의 중심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땀을 흘리고, 부모가 안심하며, 어르신들이 미소로 지켜보던 듬직한 공간.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 모집’과 ‘경영 효율’에만 집중하며 도장이 지닌 본래의 가치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도장은 다시 ‘마을의 심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과 행복을 책임지는 공간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특히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수련과 활력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도장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합니다. 시작점은 바로 관장님의 의지입니다. 관장님은 태권도 기술 중심의 지도자에서 한 지역의 건강을 책임지는 웰빙 전문가이자, 아이들의 정서를 보듬는 교육가이며, 세대 간 소통을 이끄는 공동체 리더로 다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세대와 삶을 품는 도장’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됩니다. 도장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이제 도장은 노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성인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맞춘 품새 수련, 전신 스트레칭, 호흡법은 치매 예방과 낙상 방지 등 어르신들의 신체 기능 유지에 탁월한 효과를 줍니다. 도장은 ‘노년의 건강센터’로도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도장은 여성들의 삶과 연결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태권도와 접목한 다이어트, 호신술, 요가 같은 실생활 중심의 ‘생활형 수련 콘텐츠’는 여성들의 삶을 질을 향상시켜 줄 것입니다. 여성 대상 ‘호신술 체험의 날’, ‘엄마의 건강’ 같은 프로그램은 도장을 여성 커뮤니티의 거점으로 만들 것입니다.
장애 아동과 정서적 위기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도장의 새로운 역할입니다. 태권도의 규칙성은 이들에게 신체적 안정감뿐만 아니라 심리적 균형감을 줄 수 있습니다. 소그룹 수업, 부모 상담까지 갖춘다면 도장은 교육과 치유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도장은 지역 문화를 연결하는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을 축제 같은 정기 시범공연, 도장 앞 벼룩시장, 우리 마을 어르신들의 품새대회, 태권영화 상영회 등을 통해 도장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문화 플랫폼으로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 변화는 관장님의 철학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어린 수련생 모집만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함께 키워가는 곳으로 거듭날 것인가. 관장님이 바뀌면 도장이 바뀌고, 도장이 바뀌면 마을이 행복하게 살아납니다.
태권도의 기술은 변하지 않지만, 태권도의 역할은 시대에 맞게 확장되어야 합니다. 도장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이슈가 된 고령화, 아동 정서 문제, 공동체 해체의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태권도를 ‘국기’로 삼은 이유이며, 우리가 지도자로서 지켜야 할 사명입니다.
존경하는 관장님! 내일도 기쁜 마음으로 수련생을 맞이하는 도장, 한 마을의 활력을 활짝 여는 도장이 되어 주십시오. 도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저는 오히려 더 큰 확신을 갖습니다. 태권도는 살아 있고, 우리가 다시 ‘마을의 심장’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말입니다.
저도 관장님들의 새로운 변화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함께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