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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스피드 제대로 측정하는 전자호구 시스템 개발에 애착
▷박진감 넘치는 경기 위해 교수 등 행동하는 지성인 동참 호소
글=서성원 기자(이야기를 하는 話者)

2021년 8월 17일 오후 5시 52분, 경기도 용인의 한 음식점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2012년부터 전자호구로 올림픽 경기를 세 번이나 했어. 그런데 이번 도쿄올림픽은 최악이야!”
류병관 교수(용인대 태권도학과)가 막걸리 잔을 들다 말고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비벼대고 살짝 문질러도 점수가 들어가는데, ‘뻥’ 소리 나게 찼는데 왜 점수가 안 들어가? 이런 엉터리 같은 전자호구 XXX. 재미없는 경기, 누가 방치하는 거야!”

“세계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죠!”

“서 기자. 며칠 전 진방이 형 만났는데, 그 형도 책임져야 해. 세계태권도연맹에서 기술위원장과 사무국장을 했고, 지금 집행위원이잖아. 왜 조정원 총재에게 겨루기 경기 살리자고 말 못해. 그건…”

“아니, 교수님! 양진방 회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요. 태권도학과 교수들, 특히 겨루기 전공 교수들은 망가지고 있는 겨루기를 보고 왜 나서지 않는 거예요.”

류 교수의 말허리를 자르며 서성원 기자(이야기를 하는 사람·話者)가 목소리를 높이자 류 교수가 되받았다.

“그래 말 잘했다. 나만 겨루기 살리자고 발악하는 ‘또라이(돌아이)’야! 기사 그렇게 써. 내가 또라이라고…”

“겨루기 경기 바로세우기에 태권도학과 교수님들이 동참해 주면 참 좋겠는데요. 교수들은 실천하는 지성인, 행동하는 양심이어야 하잖아요.”

“서 기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안 그러면 망가진 겨루기 되돌릴 수 없어. 파리올림픽도 3년 밖에 남지 않았어.”

말을 끝내자마자 막걸리로 목을 축인 류 교수는 휴대전화를 들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했다. 겨루기 선수 출신의 교수들이었다.

2021년 8월 17일 경기도 용인 한 음식점에서 류병관 교수(오른쪽)와 서성원 기자가 태권도 겨루기 살리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날 류 교수는 자신을 가리켜 여러 번 ‘또라이’라고 했다. ‘또라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뭔가 모자라고 어리석어 상식 밖의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의미보다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좀 무모할지 몰라도 강단 있게 어떤 일을 밀어붙이는 ‘괴짜’ 정도로 풀이하자.

그는 태권도계에서 투박하고 드센 캐릭터 교수다. 여느 사람들처럼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확실한 것은 1996년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태권도 경기분야와 학계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격정적이고 때론 거칠고 험악할 순 있지만.

그런 류 교수가 지난 달 하순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를 보고, 시쳇말로 빡 돌았다(go bananas).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겨루기를 보고 혀를 찼다.

유튜브 채널 <서가네 태권포차>에서 조정원 WT 총재를 향해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세계태권도연맹을 위한 태권도가 아니라, 태권도를 위한 세계태권도연맹이 되어야 합니다. 겨루기가 살아날 수 있는 새로운 경기 시스템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겨루기 경기가 재미없는 게 아니라, 엉터리 센서 감응 전자호구 때문에 겨루기가 재미없어졌다”며 “우리나라가 IT 강국인데, 왜 파워와 스피드를 제대로 측정하는 전자호구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류 교수는 8월 13일 <무카스>에 기고한 ‘이런 태권도 경기!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대한태권도협회는 끊임없이 태권도 기술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강구하고 그런 대회를 기획하고 실행해 세계태권도연맹 인준을 받기 위해 노력했어야만 했다. 수많은 국가 협회 중의 하나가 아니라 종주국 협회 가 아닌가? 근본적 책임은 문화체육관광부에도 있다, 법적으로도 국기인 태권도의 전자 호구시스템을 세계태권도연맹이 만들지 못하면 정부에서라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그렇게 울부짖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연구들만 지원했다 (…) 재미와 흥미를 위한 태권도 경기 활성화 방법은 간단하다. 태권도의 강한 파워를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면 족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

류 교수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겨루기 경기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세계태권도연맹,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가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태권도학과 교수들과 경기 지도자, 전문지 기자 등 태권도인들이 동참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나를 ‘또라이’라고 해도 좋아! 겨루기 경기를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나도 악에 받쳐 발악하는 거야. 이대로 죽어가는 겨루기 방치하면 안 되잖아!”

이 같은 류 교수의 호소와 몸부림에 어떤 반향과 응답이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보자. 이 글을 쓰는 기자는 동참하기로 했다. 류 교수는 “문체부 앞에서 시위하는 것은 불가피한 마지막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