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1989년 6월 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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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부터 차등점수제 본격 논의
세계태권도연맹, 1990년대 중반 긍점 검토
대한태권도협회, 1996년 차등점수제 공론화 
서성원 기자 / tkdssw@naver.com

태권도 겨루기 경기에 적용할 ‘차등점수제’는 1970년대 후반부터 불었다. 1978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는 경기규정을 일부 개정해 한시적으로 차등점수제를 적용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겨루기 경기의 박진감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차등점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주먹으로 몸통을 공격하거나 몸통과 얼굴을 발로 공격하는 득점에 일률적으로 1점을 주는 경기규칙으로는 미디어와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자성론이 확산된 것이다.

당시 태권도계는 기술 구사와 신체 공격 부위에 따라 1점에서 4점까지 득점을 차등화하면 큰 기술과 고난도 발차기가 많아져 흥미를 배가시킬 것이라고 봤다.

1989년 유도와 농구를 선례로 들며 겨루기 경기 차등점수제를 촉구한 언론보도를 보자.

– 유도의 경우 종전에는 한판과 판정으로만 승부를 가렸으나 판정시비가 잦고 다양한 공격기술을 합리적으로 채점하기 위해 절반-유효-효과 등 배점방식을 세분했다. 한판은 절반에 우성하며 절반은 유효보다, 유효는 효과보다 우위 판정으로 차등을 두었다. 또 농구도 1984년 LA올림픽 이후 관중들의 흥미를 돋우고 장신 숲에 가려 가드역할만 해야 했던 단신 선수들의 득점력을 높이기 위해 3점슛 제도를 도입했다. 태권도에서 차등점수제가 거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 태권도 차등점수제 적용여부를 놓고 체육계 일각에서는 오랜 시간 유예기간을 두고 연구해야 하고, 적응 훈련 등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점을 종합해 적용여부를 확정해야 한다. <매일경제. 1989년 6월 1일.>

이에 대해 대한태권도협회 강원식 전무이사는 이미 차등점수제를 적용할만한 여건이 성숙됐다고 분석하고 “1∼2대회 정도 적용해 보고 1990년부터 적용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차등점수제 적용은 세계태권도연맹과의 협의 부족과 경기규칙 개정안에 반영하지 못하는 등 여러 난맥으로 쉽게 적용하지 못했다.

그러던 1993년 세계태권도연맹은 차등점수제를 포함한 경기규칙을 대폭 바꾼다고 발표했다. 세계태권도연맹 김봉식 기술심의회 의장은 “뉴욕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차등점수제를 비롯한 경기규정 개정안을 확정해 통과시킨 후 2년 뒤 열리는 제12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