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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언론에 보도된 여성 태권도 기사. 왼쪽부터 동아일보 981년 2월 8일자, 동아일보 1986년 2월 7일자, 조선일보 1987년 10월 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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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초 여성 유단자 2만 명, 여학교 태권도부 창단 붐
    ▶81년 여성 심판 등장, 87년 종별대회 여성 심판 3명 위촉
    ▶80년대 중반, ‘태권낭자회’ 여성 태권도 결속과 성장 주도
    ▶‘여성 태권도’에 대한 몰이해와 배타적 사고로 제약 여전

    1980년 초·중반 호신과 건강을 위해 태권도를 수련하는 여성이 해마다 늘어나 한국여성태권도연맹에 등록된 여성 유단자는 2만 여 명에 달했고, 각급 여학교에서 태권도를 권장하거나 태권도부가 많이 생겨났다. 서울 은광여자중·고등학교는 조회시간마다 6천 명 전교생이 태권도를 활용한 88체조를 했고,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는 체육시간에 태권도를 가르쳤다. 체육주임 박은영(5단)은 “전교생이 태권도 기본동작을 익히고, 태권도부 창단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2년 7월호.>

    여자대학교에서도 태권도 바람이 불었다. 1975년 결성된 이화여자대학교 동아리 ‘이화태권도’는 매주 월·수·금요일 정기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했다. 1985년까지 대학태권도연맹에 소속되어 주로 체육학과 체육특기생을 중심으로 유단자들이 주를 이뤘으나 86년부터 이화여대 동아리연합회 산하로 들어오면서 순수한 아마추어로만 구성되어 15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화태권도부장 서영희는 “여자대학 태권도 활성화를 위해 다른 여대에도 태권도부가 많이 생겨 여대 태권도부 끼리 교류가 있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日刊스포츠. 1989년 5월 29일.>

    이런 가운데, 태권도 승단심사에 응심하는 여성들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1983년 4단에 응심한 신정열은 “여성 태권도 저변확대 일환인 태권무용 보급에 심혈을 쏟다가 승단 기회를 넘겨 응심하게 됐다”고 했고, 정효심은 “여자가 태권도를 한다면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보은 경우가 있는데, 태권도를 해보니 전신 관절운동으로 건강관리에도 좋고 인내심과 정신적인 면에거 강인한 의지가 생겨 많은 여성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3년 10월호.>

    남자들의 독무대였던 태권도 심판계에도 여성 바람이 불었다. 1981년 3월 여성 최초로 심판자격증을 취득한 장정남을 비롯해 최종숙 등이 여자 심판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1981년 장정남과 김안자 등 여자 심판들이 돋보이게 활동하고 있다며, 앞으로 각종 대회에서 여성 심판들을 적극 기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자.

    “(…) 장정남(27·4단) 양은 1981년 여성태권도연맹전에서 심판으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80게임 이상 심판을 맡았다. 태권도가 88올림픽 경기종목으로 채택될 것을 대비해 국제태권도심판이 되는 것이 그녀의 꿈. 월수입 20만 원에 게임을 맡으면 1일 심판비가 1만 원 (…)” <동아일보. 1982년 2월 8일.>

    1987년 3월 대한태권도협회가 주최한 춘계종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3명의 여성 심판이 위촉됐다. 그 전에 열린 1986년 심판강습회에 서춘희·양인옥·박정옥 3명이 참가해 실기와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3급 심판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춘희 후일담.

    “주목할 것은 여자 교육생이 (전체 300명) 3명이라는 사실이었다 (…) 남자 교육생의 조소(?)를 받는 고충도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 ‘여성 태권도’를 내 나름대로 피력해 보았으나 그들의 고정관념 속에는 넘겨다 볼 수 없는 크나큰 벽이 있음을 깨닫고 몹시 안타까웠다 (…) 교육을 받던 중 호주에서 개최한 제7회 아시아태권도대회에 참가하여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여자 선수들이 출전 선수의 30%를 차지함에도 단 한 명의 여성 임원도 없이 해외 원정경기를 치르고 돌아온 여자 선수들을 보면서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6년 6월호.>

    1982년 7월 국기원에서 제1회 한·중 친선여자태권도대회가 열렸다. 한국대표여자태권도선수선발전에서 입상한 1·2위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대표팀 A·B팀은 자유중국 대표선수들과 친선경기를 했다. 이 경기에서 1진은 5승 3패로 우위, 2진은 3승 5패로 열세였다. 대표선수들은 박선영·장희인·최경·전오순·장윤정·유연옥·김소영·김현정이었다.

    1980년대 초 여성 겨루기 선수들이 많아지자 ‘여성 생리현상이 태권도 선수의 체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논문도 나왔다. 출처=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3년 3월호.

    1980년대 중반, 여자 중학교 태권도부는 16개 팀, 고등학교 태권도부는 27개 팀이 한국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에 가입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했다. 1986년에는 중학교 8개 팀, 고등학교 5개 팀이 더 창단되고, 6개 대학도 여자 태권도부를 자체 육성하는 등 태권도부에 여성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1986년 6월 기준 단체 등록을 했거나 미등록한 여자 태권도부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대한태권도협회. 1986년 6월호.>

    [등록팀]
    – 영광여중(서울)·용곡중(서울)·서초중(서울)·영일여중(서울)·창덕여중(서울)·전농여중(서울)·당곡중(서울)·한강여중(서울)·역삼중(서울)·선화여중(인천)·상인천여중(인천)·신흥여중(인천)·상원여중(경기)·문산여중(경기)·고양여중(경기)·영북여중(경기)·양덕여중(경남)·중앙여중(전남)·청산여상(서울)·덕원여고(서울)·성암여상(서울)·은광여고(서울)·배성여상(서울)·정난여상(서울)·상일여고(서울)·한양여고(서울)·상명사대부고(서울)·인천체고(인천)·의정부여고(경기)·광동여고(경기)·성남여고(경기)·문성여상(인천)·고양종고(경기)·경민여상(경기)·한광여고(경기)·문상여종고(경기)·창원여고(경남)·배영여고(대구)·예덕실고(충남)·동래여상(부산)·부안여고(전북)·시온고(경기)·성인여대(서울)·경희대(경기)·이화여대(서울)·명지대(서울)·유도대(경기)·인천체육전문대(인천)

    [미등록팀]
    – 충남동여중(충남)·부천동여중(경기)·탄현중(경기)·경민여중(경기)·보영여중(경기)·의정부여중(경기)·낙생중(경기)·적성여고(경기)·보영여고(경기)·전곡고(경기)·동남고(경기)·청원실고(충남)·파주여상(경기)

    1980년대 중·후반 충남 연화여고도 태권도부를 육성했다. 1985년 7월 20명으로 시작한 태권도부는 국제방직 회사의 비원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도교사 곽만용과 사범 김영덕의 지도 속에 유단자도 배출했다.

    이처럼 여자 태권도부는 증가했지만 남자에 비해 여자 선수들이 참가하는 공식 태권도 대회는 너무 적었다. 여자 선수들이 참가하는 전국 규모 대회는 한국여성태권도연맹이 주최한 전국여자개인선수권대회와 대한태권도협회가 주최하는 주한외국인 및 여자부개인선수권대회 등 연간 4∼5개 정도였다.

    특히 소년체육대회와 전국체육대회에 여자부 경기가 채택되지 않은 것은 여성 태권도 발전을 위해 큰 문제였다. 이에 대해 청산여상 태권도부 감독 김영인은 “비중있는 대회를 자주 개최하여 남자 선수들과 동일하게 많은 경기에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 여자부 경기가 채택될 경우 각 시도의 경쟁은 물론 각 중고대학 교육기관에서 관심 있는 종목으로 더 투자를 할 것이고, 선수들의 양적 팽창은 물론 질적인 수준도 빠른 시일 내에 끌어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6년 6월호.>

    김영인은 또 1985년 서울에서 열린 제7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트레이너로 참가한 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도 여성 태권도인들이 성숙할 수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남존여비 사상은 이 대회 기간 중에도 여실히 나타났으며, 이로 인한 여자 대표선수단의 사기는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 선발된 선수들의 관리 및 훈련에 무관심한 것이 세계대회 결과로 비추어 볼 때 남자 선수단과 같이 1차, 2차, 최종선발전을 거쳐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절실 (…) 외국 여자 선수들의 사전 정보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며, 우리 스스로 국내 여자선수들의 기량을 너무 과소평가한 점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10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 여자부는 오히려 외국의 여성 태권도 활성화 면에서 한국 대표선수단의 일원으로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5년 9월호.>

    남자 선수들에게 비해 대회에 참가하는 횟수가 적은 것도 여성 태권도의 발전을 저해했지만 여성 태권도인에 대한 몰이해와 배타적인 생각이 더 큰 문제였다. 1986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임신자는 여성 태권도의 현실을 이렇게 토로했다.

    “여성 태권도의 현실. 이 자체에 내 자신은 밝고 희망적이기보다는 불확실하고 비관적으로 판단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무조건 여성들이 태권도를 하고 경기를 갖는 것에 대해 배태적인 생각과 조소 섞인 말투로 무시한다면, 그것이 바로 많은 이들의 실망과 불신감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된다 (…) 여성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서 태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칭하자. 우리나라의 봉건적이고 유교사상에 입각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태권도를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마음껏 기량을 펼치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게 의식을 갖는다면 얼마나 공명정대한 생각인가.”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제58호.>

    1985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여성 겨루기 선수들이 응원석에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5년 9월호.

    1987년은 여성 태권도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제8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부터 여성 선수들도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1987년에 제1회 세계여성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 여성 선수들은 핀급 장이숙(청산여상)·플라이급 이영(경희대)·밴텀급 배은정(성신여대)·페더급 김소영(성신여대)·라이트급 이은영(경희대)·웰터급 김지숙(경희대)·미들급 김현희(경희대)·헤비급 장윤정(명지대)이다.

    이 시기 한국 여성 태권도 성장은 ‘태권낭자회’가 주도했다. 그들의 활약은 여성 태권도인들의 권위를 향상시켰고 1988년 대한태권도협회 기술심의회에 여성분과위원회를 설치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태권낭자회’는 1986년 8월, 여성 태권도인들의 만남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22명의 참여 속에 발족됐다. 처음에는 3단 이상에게만 회원의 자격이 주어져 다소 배타적인 모임이었으나 1987년 10월 정기총회를 통해 만 18세 초단 이상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폭을 넓혔다. ‘낭자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초창기 회원은 대부분 미혼 여성들이었으나 회원들이 결혼을 하면서 주부 회원이 늘어났다. 70여 명의 회원들의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광주 등 전국에 골고루 있어 정기모임은 한 달에 한 번만 가졌다. 또 태권도 소식을 나누고 태권도 동작과 호신술 등을 익혔다. 특히 ‘태권낭자’를 계간으로 발간하며 회원들의 동향을 전하고 새로운 기술연구에도 힘썼다. <日刊스포츠. 1989년 4월 1일자에서는 ‘클럽순례 – 태권낭자회’를 상세하게 다뤘다.>

    이와 함께 일반 여성을 대상으로 호신술 강습을 전개하고 태권낭자회장배 여자태권도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 후 ‘태권낭자회’는 ‘한국여성태권도회’도 발전해 1996년 제6회 한국여성태권도회장기태권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89년 태권낭자회가 정기수련을 하고 있다. 맨 앞이 장정남 사범. 시진=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지.

    1980년대 후반, 태권낭자회 회장으로서 대한태권도협회 여성분과위원장이 된 장정남은 ‘여성분과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8년은) 여성 태권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태권도인의 중심조직체인 대한태권도협회 내에 여성분과가 신설되어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한 해이기도 했다 (…) 여성분과의 모든 활동 내용이 전체적인 태권도 발전에 기여하는 자기 사업내용을 가져야 하며, 여성 태권도인이 처해있는 현실적인 제반 문제를 찾아 이를 해결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88서울올림픽을 통해 얻어진 태권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 여성 태권도인의 저변 확대와 모든 활동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구심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여성 유단자의 취업 문제, 지도자 교육 등 내실 있는 활동을 펴 나가야 할 것이다 (…) 아직도 여성 태권도 유단자 인구조차 파악할 수 없는 시점에서 올해 안으로 기필코 유단자 배출 도표를 만들고자 한다. 종전에 운영하여온 한국여성태권도연맹이 건설적이고 진보적으로 지속되어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지금과 같이 태권도의 전문적인 여성 인재, 그리고 태권도를 사랑하는 실전 멤버들이 여성분과로 결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해체되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았나 생각 (…) 조만간에 여성 태권도인이면 누구나 동참하여 소리를 말할 수 있는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앞으로 여성 태권도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바람직한 장이 되도록 할 것이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9년 3월호.>

    부산에서 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현진은 “다수의 여성들이 태권도 지도자의 길을 가려고 하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태권도는 남녀노소를 물문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이며 남성 지도자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빈틈없는 도장 운영으로 미개척지인 여성 태권도인의 저변확대에 톡톡히 한 몫을 하리라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태권도인들의 실질적인 활동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고, 여성 태권도 품새 및 겨루기 대회가 자주 열려야 하며, 공식석상에서 여성 태권도인의 발전 기회가 남성 지도자들과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고, 임원 선출도 여성들이 발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 1989년 3월호.>

    한편 1989년 11월 대한체육회가 주최한 ‘여성체육세미나’에 태권도계를 대표해 여성 코치와 심판 및 일선 도장 사범 등 15명의 여성 태권도인들이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대한태권도협회 여성분과 부위원장 서춘희는 ‘스포츠로서의 태권도’ 강의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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