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양진방 회장이 권법 주요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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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관통하는 무예의 이론과 실제, 역사 통해 맨손무예 발자취 해석하고, 태권도와의 연관성 탐구

서성원 기자 / tkdssw@naver.com

‘양진방과 함께 하는 무예통지(武藝通志) 강독반’이 회를 거듭할수록 의미와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강독반(講讀班)은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무예의 이론과 실제, 역사를 통해 맨손무예의 발자취를 해석하고, 나아가 태권도와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공부 모임이다.

양 회장은 지난 2월 용인대 태권도학과에서 정년퇴직한 후 강독반을 만들어 후진들과 주기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무예 인문학’의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

교재는 『무예도보통지주해(武藝圖譜通志註解)』를 선택했지만,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지은 병서(兵書) 『기효신서(紀效新書』(1560)와 『무예제보(武藝諸譜』(1598), 『권보(拳譜)』(1604),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1610),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1790)를 양 회장이 인용하고 재해석해 맨손무예와 태권도의 개념과 의미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강연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렵다. 애당초 관련 내용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좀처럼 알아들을 수도 없다. 선조실록과 무예 관련 고서에 나오는 중의(重義)의 한자와 난해한 내용은 강독반 회원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긴 호흡 속에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용인대에서 가진 1회 모임 후 강독반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양 회장은 지금까지 강연에서 『기효신서』에 나오는 ‘몸의 동작과 방법’을 ▷신법(身法)=몸의 힘을 빼고 어깨는 내리고 팔꿈치는 아래로 향하게 하는 등 전반적인 몸의 상태 ▷수법(手法)=손과 팔 부위의 사용법과 손으로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 ▷각법(脚法)=다리의 자세와 보법 및 중심 이동 ▷진퇴(進退)=방향을 전환하고 피하는 등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며 옆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눴다.

여기에 구체적인 동작과 기술은 ▷퇴법(腿法)=발로 차는 기술 뿐만 아니라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발놀림 ▷질법(跌法)=손으로 잡아서 던지고 넘기고 뒤집어 넘어뜨리는 것 ▷타법(打法)=손이나 주먹으로 지르고 막고 치는 타격 기술 ▷나법(拿法)=관절과 힘줄 등을 꺾고 조르는 것 등으로 구분했다.

11월 4일 오후 대한태권도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4회 강연에서는 명대(明代)의 권술(권법)을 설명하면서 “명나라 시대에는 군대무예와 민간무예가 결합되어 맨손무예의 발전이 본격화했던 시기”라며, 그 당시 척계광이 저술한 『기효신서』에서 △세(勢)는 기술 동작 △보(譜)는 동작을 설명한 글 △결(訣)은 비결 △도(圖)는 그림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 『기효신서』는 1번, 2번, 3번 식으로 기술과 동작이 나눠져 있지만, 『기효신서』의 영향을 받은 『무예도보통지』는 한번 앞으로 나가서 뒤돌아서는 등 동작이 이어져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마무리가 된다. 여기서 ‘품세(品勢)’의 흔적과 기록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고 말했다.

1972년 대한태권도협회가 발행한 『태권도교본』 품세 편 표지. 교본 기조는 당시 기술심의회 의장을 맡은 이종우가 주도했다.

‘품세(品勢)’는 1987년 국기원이 ‘우리말 애용’ 바람에 휩쓸려 한글학자의 자문을 받아 ‘품새’로 바꾸기 전까지 약 17년 동안 사용했던 태권도 용어다. 평소 양 회장은 “태권도 동작과 기술은 단순히 정지된 동작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세(勢)’에는 동작과 기술의 흐름, 기품과 기세 등 형태적 변용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세(勢)’에는 품새의 ‘새’에는 없는 움직임(Movemant), 힘(Power), 흐름(Flow) 등이 생동감 있게 꿈틀거리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날 양 회장은 『기효신서』,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권법과 세법의 내용을 촘촘히 비교하면서 “『기효신서』는 개별적으로 세법을 나열해 품세 형식이 아니지만, 『무예제보번역속집』과 『무예도보통지』는 ‘세(勢)’를 품세 형식으로 연결해 연무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면서도 “ 『무예제보번역속집』의 품세와 『무예도보통지』의 품세는 동작의 순서와 수(數)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11월 4일 진행된 4회 강연에서 양진방 회장이 무예 관련 문헌의 내용을 비교하고 있다.

그는 “『기효신서』를 신비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예도보통지』에 영향을 준  만큼 (그것을 낳게 한 최초의) 오리지럴(original) 관점에서 재미가 없는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흥미 있게 조금씩 알아보자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여러분과 내가 원문을 보며 『기효신서』와 『무예도보통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재미도 있고 소중했구나 하는 기쁨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양 회장은 이어서 권법 세(勢)의 내용과 현대 기술동작과의 관계, 권법의 주요 기술 등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권(拳)이 항상 주먹을 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주먹 이외 손날, 손바닥, 손등을 무기로 하는 것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당시의 무예에서 발로 걷어차고 밟고 뻗는 등 차기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차기 자체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발차기 자체에 대한 기술의 분류나 개념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질법, 손기술과 결합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맨손무예와 무기무예와의 기술적 관계’를 설명하며 “맨손무예의 핵심 기술인 ‘막기’와 ‘차기’는 검과 창을 들고 하는 무기술과 기술적 관계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하면서 “군대에서 행해졌던 권법의 품세가 군대 밖으로 나와 민간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수련·전승되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강독반 5회 모임은 두 달 후에 열릴 예정이다.